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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산 이름은 백두대간이 소백산을 지나 저수재와 벌재를 지나며 큰 산을 솟아 놓고 깊은 계곡도 만들어 놓았는데 이 산은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하는 1/25,000지도에는 황정산(皇庭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예천군읍지」에 보면 작성산(鵲城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문경군지(1994년 10월 판)」에는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웬만한 산에 아호가 한 둘 딸리는 것은 기본이라 하겠지만 해도 너무한다 싶다.
더더구나 동북쪽 십리 밖에도 황정산(黃庭山)이 있으니 어느 게 어느 산인지 알 수 가 없다. 그렇다면 뒤죽박죽된 산이름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이 산이 속한 동로면은 고려시대 때까지 작성현(鵲城縣)으로 불리어 왔는데 까치 작(鵲) 자에 문제를 푸는 열쇠가 있다.
이곳은 신라와 고구려의 접경 지대로 어느 나라 입장에서 보더라도 변방의 땅이었다.
지금도 명전리에 차갓 마을이 있고 차갓재라는 고개가 있다. 여기서 '갓'은 충청, 경상, 전라도에서 사용하는 주변이란 뜻의 사투리다.
'갓'이 발음을 하다보면 '가치'가 되고 마땅한 한자를 찾다보니 까치작(鵲)을 생각해 낸 것이다.
문안골에 작성(鵲城)이란 성이 있어 산이름을 작성산이라 명명한 것이다.

또 황장목이 많아서 황장산이고. 이것은 누루 황(黃)에다 창자 장(腸)자를 쓰는데 황장목을 베어 보면 이금이 들어(송진이 안으로 스미며) 자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고 황장목은 그날 벤 것이라 하더라도 원래 서 있던 방향과 똑같이 세우면 전혀 뒤틀림이나 갈라짐이 없어서 좋은 건축재료로 사용되었다 한다.
또 이 산이 황장산으로 불리게 된 것은 춘양목(春陽木)과 쌍벽을 이루며 좋은 목재의 상징처럼 여겼던 황장목(黃腸木)이 많기 때문이다.
황장목은 목재의 균열이 적고 단단해 왕실이나 정부의 필요에 따라 대궐이나 임금의 관(棺), 선박 등을 만드는데 쓰여졌다.
조선 숙종 때(1680년) 이 산에서 일체의 벌목과 개간을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정하고 나라에서 관리를 파견해서 감시를 했다.
당시에 세워진 봉산표지석이 명전리에 남아 있다. 봉산으로 정한 곳은 이곳 외에도 32곳이나 되지만 다른 곳에서는 표지석을 발견할 수 없고 유독 이곳에서만 발견되었다.

또 황장산으로 불러야 된다는 이유는 문헌에 기록된 것이나 자료에 의하면 이 산이 작성산으로 불이어 왔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이 산이 봉산으로 지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산 이름이 황장산으로 바뀌게 되었고 근대 최초의 측량이라 할 수 있는, 1925년 조선 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발행한 '조선의 산악 명칭과 소재, 높이(朝鮮山岳名稱所在眞高)에 황장산이라 표기되어 있고 또한 동로면에 계시는 노인들이 황장산이라 부르고 있음을 찾을 수 있다.

황장산은 예전부터 산이 아니라 전쟁터이고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고구려가 서로 이 산을 차지하려고 피나게 싸웠다 하는데 신라가 이 산을 넘으면 남한강을 따라 침공할 수 있고, 고구려도 이 산을 넘어야 신라 땅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으니까 한치의 양보도 없이 싸움을 했으며, 6.25사변 때도 이 지방 빨치산들이 다 황장산에 숨었는데 산세가 험하면서도 고만고만하니까 앞서 도망가 숨으면 토벌대가 쫓아가지도 못하고 가도 찾지를 못했으며 또 인민군이 낙동강 전투에서 패하고 후퇴할 때 치룬 작성전투에서 수많은 전사자를 냈으며 그 시체들을 다 끌어다 황장산 자락에 묻어서 지금도 밭에서 유골이 나온다고 한다.

황장산에서 뻗어나간 모든 능선은 암봉과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차갓재에서 벌재까지 이어진 백두 대간 주능선이 그러하고, 정상에서 방곡리로 뻗어내린 투구봉 능선이 또 그러하며 정상에서 베바위능선, 감투봉에서 안산다리 능선, 약사정 마을에서 수리봉으로 올라친 암릉이 그러하다. 일견 기상 높고 부리부히한 남성미를 간직한 산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대로 멋을 낼 줄 알면서도 속 깊은 조선 연인네의 풍모를 간직한 산처럼 보이기도 하다.
황장산의 여성스러움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채 아기자기한 암릉으로 이루어진 능선이 그러하다. 북한산 인수봉이나 설악산 울산암처럼 큰 바위는 없다. 바위들이 고만고만하고 위압적이거나 빈몸으로 못 오를 바위는 거의 없다.
다홍치마에 울긋불긋 수놓아진 꽃그림 마냥 바위들은 분수 넘치게 크지도 않고 산세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위들의 모양새 또한 여성스럽다. 베를 한올 한올 늘여뜨려 놓은 것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지어진 베바위, 치마를 곱게 펼쳐 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치마바위, 비녀를 꽃아 쪽을 진 것처럼 생긴 감투봉이나 투구봉이 여성스러움을 말해 준다. 정상 못미처 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멧등바위는 도도한 여인의 이마쯤이라 하면 되겠다.
쉽게 몸을 내돌리지 않은 여인의 절개를 말해 주는 것처럼. 그리고 황장산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산이 대미산인 것이다. 해서 서편으로 기우는 시간에 대미산에서 그 산을 보면 알 수 있다. 넓게 펼쳐진 치맛자락은 벌재에 닿고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다홍치마의 무늬처럼 빛나며 이마인 멧등바위 너머로 보일락 말락 투구봉이 쪽을 진듯하여 여인이 정성스레 한올한올 베를 늘어뜨리고 있는(베바위) 모습이다.

그러나 그 산은 화려하게 치장만 한 것이 아니다. 그녀의 치맛자락을 넓고도 넓어서 그 품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반나절은 족히 걸리는 골짜기가 남북으로 몇 갈래씩 뻗어 있다. 안산다리로 내리치는 골짜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골짜기가 지금 내려가는 것인지 오르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펑퍼짐하며 깊다. 열자식 다 품는 후덕함이 있는 여인인 것이다. 또한 수천년 동안 남정네들 피흘리며 쓰러지는 모습 죄다 지켜보고도 넉넉한 자태를 잃지 않는 인고(忍苦)의 여인인 것이다.

황장산은 여름을 제외한 계절엔 능선을 따라 산행하는 것이 좋다.
아기자기한 암릉을 오르내리며 주변의 산들을 감상하는 것은 기본이고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가을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풍을, 겨울에는 눈 덮인 산하의 풍경을 덤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름 산행지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황장산을 제대로 알지 못한 말이다. 문안골이나 토시골, 우망골은 어느 산의 계곡에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다. 계곡에 물도 많을 뿐만 아니라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아 계곡산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황장산을 올라 다시 안생달로 생달리 안산다리를 기점으로 작은차갓재∼정상∼산태골∼ 안산다리로 내려오는 코스는 가장 빠른 시간에 황장산을 둘러 볼 수 있는 코스다. 차갓재에서부터 정상까지 이어진 백두대간 능선의 가파르지도 않고 아기자기한 암릉미를 즐기며 동서남북에 솟아 있는 산들을 감상할 수 있다. 안산다리 광산에서 10분쯤 가면 계곡은 오른쪽으로 굽어 돌아가고 길은 곧장 북쪽으로 계곡 왼쪽 비스듬한 사면으로 나 있다.
아름드리 낙엽송이 빼곡히 들어찬 숲이라 산책로처럼 느껴진다.

10분쯤 더 가면 비탈은 제법 가팔라진다. 팍팍한 다리 두들기며 10분쯤 가면 헬기장이 있는 고개에 닿는다.
작은차갓재라 부르는 이곳은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차갓 마을로 해서 봉산 표지석이 서 있는 명전리로 내려갈 수도 있고 우망골로 갈 수도 있다. 작은차갓재에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가야 한다. 한낮인데도 어둠침침한 소나무숲을 지나 가파른 능선을 10분쯤 오르면 작은 바위 위에 서게 된다. 이곳부터 천지사방이 한눈에 드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갈 수 있다. 서남쪽으로 매끈하게 솟아 있는 대미산과 여우목을 지나 운달산, 그리고 그 뒤로 문경의 진산 주흘산이 솟아 있다. 북쪽으로는 암봉으로 이루어진 도락산이, 동북쪽으로는 두 개의 봉우리가 솟은 수리봉과 신선봉 뒤로 황정산(黃庭山), 그 뒤로 멀리 소백산이 아스라이 보인다.

황장산의 얼굴 격인 멧등바위와 깊게 패인 베창골, 베바위 능선도 보기좋다. 능선길은 가파르지 않다.
작은 바위를 오르내리며 가는 길이라 물리지 않는 길이다. 중간중간 넓적한 바위도 있어 숨이 차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쉬면 된다. 20분쯤 더 가서 가파른 비탈을 10분 가량 오르면 능선이 오른쪽으로 휘어져 멧등바위로 이어진다. 좌측에 암봉이 솟아 있어 잠시 들럿다 가는 것이 좋다.
기품 있는 소나무 몇 그루가 우산처럼 서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서쪽과 북쪽의 하늘과 산들이 막힘없이 보이는 곳이다. 이제 산행의 가장 난코스인 멧등바위로 올라 바위 능선을 얼마 가지 않으면 정상이다. 멧들바위에서 정상까지는 좌우 사면이 가파른 비탈이라 조심해야 한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눈이 내릴때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멧등바위에서 오른쪽으로 바위를 돌아 왼쪽으로 길이 나 있다. 10분 가면 정상이다.

정상은 언제 암릉을 지나왔나 싶게 육산의 모습을 하고 헬기장과 달랑 정상 표지목 하나 세워져 있다.
벌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을 빼고 나무에 가려 전망이 신통치 않다. 하산길은 산태골이다.
정상에서 감투봉 방향으로 10분쯤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면 잘록한 곳에 닿는다. 오른쪽 안산다리 마을 방향으로 가파른 비탈을 자세히 살펴보면 표지기가 보이고 희미한 길을 찾을 수 있다.
이곳부터 안산다리 마을까지는 에누리 없는 내리막이다. 옛날 안산다리 사람들이 문안골로 해서 단양군 방곡으로 마실 다니던 길이라 한다.
너덜지대를 20분 더 내려가자 계곡의 기울기는 완만해지고 V자 계곡 끝으로 안산다리 마을이 보일락말락 한다. 계곡이 거의 끝나가는 곳에서 오른쪽 비스듬한 비탈로 길이 이어진다.
산길이 끝나는 곳에 무덤이 있고 사과나무가 심어진 과수원이 펼처진다. 그 아래 안산다리 마을에 햇살이 따뜻하다.

백두대간을 타고 안산다리 마을에서 베바위로 올라 정상∼치마바위∼폐맥이재∼벌재코스 황장산 능선 산행코스중 가장 길다.
베바위에서부터 정상까지는 황장산이 품고 있는 아기자기한 암릉미를 만끽할 수 있는 길이며 정상에서 벌재까지는 백두대간 주능선을 밟아 보는 길이다. 황장산 정상에서 치마바위까지는 능선 오른쪽 비탈로 암릉과 절벽을 보며 가는 맛이 있고, 왼쪽 문안골 계곡의 깊고 아늑한 멋을 느낄 수 있는 코스다.

안산다리 마을을 출발해 광산을 지나 조금만 가면 베바위 오른쪽으로 잘록한 곳이 보인다. 이곳에서 곧장 잘록이를 향해 올라야 한다.
산행 초입에 표지기나 뚜렷한 길 흔적은 없다. 5분 쯤 잡목을 헤치고 가다보면 베바위 오른쪽 잘록한 안부에서부터 패인 가파른 계곡을 찾을 수 있다. 계곡 안이 온통 바위들로 가득찬 너덜이다.
폭우가 쏟아질 때 산행을 하면 위험하다. 계곡을 따라 곧장 오르면 베바위까지 갈 수 있다. 바위들이 제대로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딛고 오를 때는 조심해야 한다. 30분쯤 오르면 왼쪽에 깎아지른 베바위가 보인다. 길은 베바위 밑을 오른쪽으로 돌며 나 있다.

이곳에서 10여분 베바위를 돌아 가파른 비탈을 오르면 잘록한 안부에 설 수 있다. 안부에서 왼쪽으로 올라 베바위 위에서 잠시 쉬는 것이 좋다.
안부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능선 왼쪽으로 돌아서 첫 번째 봉우리로 오르게 나 있다. 이곳부터 길이 뚜렷하다.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서면 왼쪽 베창골과 오른쪽 산태골이 협곡처럼 패인 모습을 하고 있어 볼 만하고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과 멧등바위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시원스런 경치를 즐기며 작은 암릉들을 오르내리며 가는 길이다.

암릉은 좌우로 깎아지른 벼랑이어서 짜릿한 맛을 준다. 그러나 위험하거나 어려운 길은 아니지만 눈이 오거나 사방에 안개가 자욱한 날은 조심해서 길을 더듬어 가야 한다. 길 중간중간 기품 있는 소나무와 바위가 어울려 아름다운 경치를 연출한다. 베바위 안부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쯤 걸린다. 정상에서 감투봉을 지나 985봉 가기 전의 헬기장까지 가는 길은 두 갈래다.

정상에서 10분쯤 내려오면 잘록한 곳에 닿는다. 오른쪽으로는 산태골, 왼쪽으로는 문안골로 내려갈 수 있다.
이곳에서 감투봉을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우회하여 985봉 가기 전의 헬기장으로 갈 수도 있고 짜릿한 칼날 능선을 지나 감투봉을 올랐다 왼쪽 비탈로 해서 가는 길이 있다. 궂은 날씨가 아니면 어느 길로나 갈 수 있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 날에는 우회해서 가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잘록한 안부에서 15분쯤 가면 헬기장에 닿는다. 헬기장 가기 10미터쯤 전 황장재에서 토시골로 내려가는 길과 문안골로 내려가는 길이 나뉜다.
985봉을 지나면서 치마바위까지는 암릉의 연속이다. 특별히 위험한 곳은 없지만 주위를 잘 살피며 가야 한다. 안개가 끼어 시야가 흐릴 때 벼랑이나 바위의 우회도로를 찾지 못해 길을 잘못 택하면 위험한 곳도 있다.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달아 놓은 표지기를 따라가면 안심이다.

985봉에서 암릉을 오르내리며 한시간 정도 가면 치마바위에 닿는다.
능선 오른쪽으로 10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슬랩(바위비탈)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멀리 동로면 소재지를 두고 솟아 있는 천주봉과 공덕봉 너머로 운달산의 자태도 보인다. 치마바위에서 5분 정도 더 가 오른쪽 가파른 비탈로 내려서야 한다. 왼쪽으로 크게 발달한 능선을 따라가면 858봉이나 방곡리로 빠진다. 이곳에서 10여분 내려서면 폐맥이재에 닿게 된다.

폐맥이재에서 길 흔적은 불분명하지만 왼쪽으로 가면 삼밭구미골로 해서 방곡리로 가게 되고 오른쪽으로 들면 갈밭골로해서 동로면으로 갈 수 있다. 폐맥이재에서 20분 오르면 926봉 가기 전의 봉우리에 닿는다.
오른쪽으로 바위쉼터가 있다.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동로면의 아늑한 뜰과 천주봉을 보며 아픈다리를 풀어주기에 좋다. 이곳에서 평탄한 길을 5분쯤 더 가면 926봉이다. 926봉에서 길이 두갈래로 갈린다. 오른쪽 백두대간 능선을 곧장 따라가면 벌재에 닿고, 왼쪽길로 가면 낙엽송 조림지대를 지나 벌재 아래에 닿게 된다. 어느 쪽으로 가든 길은 잘 나 있다.

925봉에서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20여분 가면 마지막 헬기장이 있다. 가파른 비탈을 10분쯤 내려서면 벌재다.
계곡산행이 너무 좋다. 토시골에서 황장재로 올라 문안골로 내려가는 길은 여름 산행지로 적격이다. 주능선에 붙는 20여 분을 제외하고는 오르막이라 느낄 수 없는 편안한 길이다. 계곡에 물도 많아 손발을 담궜다 가기도 좋고 나무가 우거져 서늘한 느낌을 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토시골 계곡은 사람 때를 거의 타지 않아 원시적인 맛도 함께 즐기면서 산행할 수 있다.

산행은 어느쪽에서 시작해도 좋지만 토시골을 들머리로 해서 문안골로 가는 것이 좋다. 토시골보다 문안골이 계곡미도 좋을뿐더러 계곡에 물도 많아 여차하면 물에 뛰어 들어 땀을 식혔다 가도 좋기 때문이다.
토시골 산행 들머리는 폐교된 동로초등학교 생달 분교나 생달분교와 약사정 마을 중간에 있는 다리다.

생달분교는 1945년 개교 이래 졸업생 507명을 배출하고 1995년에 폐교되었다. 생달초등학교 운동장을 지나 화장실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길이 보인다. 이 길은 얼마가지 못해 여러 갈래로 산만하게 흩어진다. 길에 괘념치 말고 계속 오른쪽으로 가 작은 능선을 넘어야 한다.
10분쯤 가면 능선에 서게 되고 수리봉에서 약사정 마을로 흘러내린 암릉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계곡 사면을 비스듬히 타고 내려가면 우마차 길과 만나게 된다.

우마차 길은 얼마가지 못해 장마에 쓸려내려가 중간중간 끊어지면서 이어진다. 물을 건너갔다 다시 건너와 5분쯤 가다 다시 계곡을 건너간다.
이때부터 계곡 오른쪽으로 산죽밭을 헤치며 가야 한다.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아니라서 길이 잘 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샛길로 빠질 염려 없이 계곡만 따라가면 된다. 20분쯤 산죽밭을 가면 길은 다시 계곡을 건너 계곡 왼쪽 비탈로 이어진다.

예전에 우마차가 다니던 길이다. 길을 제대로 찾지 목했다면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곧장 올라가면 된다.
이곳에서 보면 감투봉과 985봉 사이에 있는 황장재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이고 그곳만 향해 가면 된다.
그러나 가파른 곳이 거의 없는 지형이라 생각보다 가깝지는 않다.

40분쯤 왼쪽 비탈로 난 우마차 길을 따라가면 길이 끊기면서 다시 게곡과 만난다. 이곳부터는 게곡을 곧장 따라가야 한다. 20여 분쯤 가면 Y자로 갈자진 계곡과 만난다. 길을 찾기가 아리송한 곳이지만 이곳만 오르면 황장재다. 왼쪽 계곡으로 가면 감투봉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야 황장재로 갈 수 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얼마가지 않으면 계곡은 갑자기 가팔라지면서 한발짝 떼기도 힘이 든다.
20여 분 땀을 쏟으며 오르면 황장재에 닿게 된다. 오른쪽에 헬기장이 있다. 이곳에서 정상을 올랐다 산태골이나 베바위 능선을 타고 안산다리 마을로 갈 수도 있고, 멧등바위를 지나 작은차갓재에서 차갓 마을이나 안산다리 마을로 갈 수도 있으며, 투구봉으로 해서 방곡리로 갈 수있다.
문안골로 내려가는 길은 토시골에서 올라온 곳과 마주본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된다.

문안골은 하산길로 많이 이용되는 곳으로 표지기도 많이 붙어 있을뿐더러 길도 확실하다. 중간중간 쉬다 갈 수 있는 곳도 많아 황장산 골짜기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다.
10여 분 비탈을 줄달음질치듯 내려가면 정상과 감투봉 사이의 안부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이곳부터 계곡은 기울기가 완만해져 평탄해진다. 몇십 년 전에는 이곳에 몇몇 가구가 약초를 캐고 화전을 일구며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만큼 깊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길은 계곡물을 건넜다 건너왔다 하며 이어진다.
중간중간 표지기도 많이 붙어 있다. 30분쯤 더 내려가면 세갈래로 갈라졌던 계곡이 하나로 만나는 곳이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길은 왼쪽 비탈로 나 있다. 30여 분 더 내려가면 50평쯤 되는 평평한 바위가 계곡 가운데 있는 곳이 나타난다. 문안골 반석이다.
두 갈래의 곅4고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곳으로 계곡물이 눈에 띄게 많아지는 곳이다.
길은 계속 왼쪽 비탈로 나 있다. 계곡에는 집채만한 바위부터 팥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여 있는 모습을 한 기암괴석들이 서 있다.

문안골 반석이 있는 곳에서 20분쯤 더 내려가면 문안골의 관문인 작성이 보인다. 거대한 자연석을 위에 올리고 옆으로 세워 문을 만들어 위압감을 주는 곳이다. 이곳을 막고 지킨다면 문안골 안은 어느 곳에서도 침입할 수 없는 요새가 된다.

작성을 지나 물을 세 번 건넜다 건너와 오른쪽 비탈로 난 길을 따라 30분쯤 내려오면 산행은 끝이 난다.
물을 건너 단양에서 방곡리로 이어진 도로에 올라서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선 멋드러진 장승이 반갑게 맞아준다.

ㆍ전해오는 이야기
고려 공민왕이 작성으로 피난을 왔다 돌아간 후 왕비를 무사히 피신시켜 준 것에 감사해 임금황(皇)자뜰정(庭)자를 써 '임금이 거닐던 정원' 이라는 뜻으로 하사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황장산으로 불리어 오던 것을 일제 때 '일본 천왕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전자는 조선 중반기까지도 작성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온 것에 비추어 볼 때 근거가 부족하고 후자도 믿지 못할 바다.
백두 대간(白頭大幹)을 따라서...
산을 따라 이리 돌며 저리 돌아 오르고 내리며 땀을 닦고 멀리 산을 바라보며 발길을 옮겨 산을 찾는 산사람들...
어느 산이 좋고 나쁘다고 말 할 수는 없으나 대미산의 너그럽고 넉넉한 품 속과 정상의 전망은 그야말로 아주 좋다.
백두대간이 설악·오대·소백산을 지나서 죽령을 만들고 도솔봉(1,314m)을 지나 벌재를 만들고 다시 황장산(1,077m)을 일으키며 달려 이곳 대미산을 지나서 하늘재, 문경새재, 이화령을 두고 희양산, 속리산을 지나 멀리 백두대간의 발길을 지리산으로 돌리고 있는 곳에 아주 점잖게 편안하게 앉아 있는 대미산. 이름이 대미산(大美山)이어서인지 참으로 아름다운 산인데, 멀리 소백산이 보이고 주흘·조령·백화·희양· 속리산까지 보이는 시원한 전망과 산들의 모임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퇴계 선생께서 이름 지었다고 전하는 산
조선 영·정조 때에 발간된 문경현지에 '黛眉山在縣東北三十里 自小白山來爲本縣諸山之祖'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대미산을 한문으로 '黛眉山'이라 쓰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 '大美山' 이라고 쓰는 것은 1936년 발간된 조선환여승람(朝鮮환與승覽)에 黛眉山 '在郡東北自順興小白山來爲本郡樗散主脈' ' 退溪李滉 命名 大美山'의 기록이 말하듯 퇴계 이황선생께서 명명(命名)하여 '大美山' 이라고 쓴다고 되어 있다.
옛날 문경새재가 있기 전에는 길이 대미산 바로 아래의 여우목과 계립령(하늘재)을 지나서 한양으로 갔다고 한다.
지금도 계립령 길을 따라 석탑과 석불이 있으며 산성이 남아 있어 사학자들의 역사연구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며, 옛길 옆에 남아 있는 석탑·석불은 무심한 나그네의 발길에 역사를 느끼게 해준다.

산행의 시작은...
대미산 산행은 문경에서 택시나 버스를 이용하여 문경읍 중평리 여우목마을이나 박마을에서 시작할 수 있고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에서도 시작할 수 있으나 외지에서 온 등산객은 여우목마을에서 시작함이 가장 빨리 정상에 올를 수 있어 좋다. 여우목 마을에 내리면 천주교 성지라는 간판과 흰십자가와 함께 마을에 5호 정도의 농가가 있는데 마을 중간에 있는 샘에서 물을 수통에 채우도록 한다. 맨 위의 오른쪽 농가 옆을 지나면 오른편에 큰 감나무가 있는데 이것이 이정표 역할을 한다.
감나무 밑을 지나 올라서면 바로 산행기점이 되는데 이곳에는 리본이 많이 붙어 있어 길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머리 위를 조금 지나는 크기인 참나무, 소나무 숲을 지나 10분쯤 가면 굵기 10∼15㎝ 정도의 나무가 빽빽히 있는 산길을 올라가게 된다.
경사가 조금 급하긴 하지만 길이 좋아서 힘들거나 위험하지는 않다. 약 60분쯤 오르면 대미산 정상에서 여우목고개 쪽으로 뻗은 지능선상에 오르게 되는데 약간 공터 지대인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 돼지골의 최상부다.

숲 밑의 풀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경사가 급하지 않은 길을 따라 약 40분을 오르고 다시 5분 정도 급한 경사를 오르면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은 억새밭이어서 시원한 전망과 부드러운 산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정상에는 산들모임 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단정한 모습으로 서 있고 정상에 서면 멀리 소백산으로부터 속리산까지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행기점을 박마을이나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 허리터로도 할 수 있으나 숲이 우거지고 등산로가 잘나 있지 않아 독도능력과 안내자가 필요하다.

심마골에서는 산삼이, 돼지골에는 산돼지가 정상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1045고지를 향하다가 가장 낮은 안부에서 오른쪽 골짜기로 들어서면 이곳에서 가끔 산삼을 캤다는 소문이 들리는 심마골이다. 심마골로 내려서는 잘록이에서 100m 정도 아래에 몇몇 산악인들이 샘을 보수하고 눈물샘이라 이름 붙인 샘이 있다.
10년 전쯤에는 이곳 샘은 샘이라기보다 그냥 물이 조금 고여 있는 웅덩이로 낙엽에 덮여 있어 식수로 사용이 불가능했던 것인데 주위의 돌을 모아서 샘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종주를 하는 산악인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이 샘은 계립령에서 벌재까지 긴 종주기간 동안에 가장 능선 가까이 있는 샘이다. 하산은 심마골, 돼지골, 충청북도의 용하구곡으로 어디로도 내려갈 수 있으나 교통편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될 것이다. 어느 산인들 아름다운 야생화와 신비한 약초가 없으리요마는 특히 대미산에 많은 것은 산 전체가 기름진 흙으로 덮여 있는 대미산을 식물의 성장에 아주 좋아 산나물과 야생화가 지천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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